20211102 제주의소리_양은희의 예술문화_자연과호흡하는예술
2022-03-22 2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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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호흡하는 예술: 김순임과 강술생·김미숙의 대지 작업

[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8) 제주 장소·공간을 탁월하게 해석하는 시도들

2021년 10월 예년처럼 예술이 넘쳐났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예술의 열기를 이기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산지천변과 인근에서 열린 아트페스타인제주와 선흘리에서 바닷가로 뻗은 야생에 펼치는 불의 숨길 프로젝트, 그리고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프로젝트 제주 등등 많은 전시와 행사가 열렸고 열리고 있다. 

넘쳐나는 작품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 두 점을 소개한다. 하나는 산지천 바닥에 돌담을 설치한 김순임 작가의 <흐르는 돌>이다. 아트페스타인제주의 일환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전시가 개막일 보다 10일 일찍 제주에 와서 썰물이 될 때마다 산지천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뒹그는 돌들을 골라 담을 쌓기 시작했다. 지난 몇 주간 산지천을 오간 사람들은 한 여성이 홀로 물속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곤 했을 것이다. 물이 좋을 때 빨래하던 시절도 있었고 식수를 얻는 장소였던 산지천이지만 최근은 사람이 들어가 활동을 하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러니 물속에서 홀로 돌을 찾아 담을 쌓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산지천에서 작업하는 김순임 작가.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물이 드나드는 하천 속에 돌담을 만드는 일은 예상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달라지는 썰물 시간대를 확인하고 새벽이던 늦은 오후던 물 때에 맞추어 들어가서 밀물이 될 때까지 작업하곤 했다. 이튿날이 되면 밤사이 흐른 물의 압력 때문에 일부 돌담이 무너지기도 하는데 작가는 다시 또 쌓는 과정을 반복했다. 어떤 날은 맑은 가을 날씨였다가도 비가 오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날도 있다. 그러면 돌담은 조금 더 무너지고 다시 쌓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바닥의 모래부터 물살의 흐름까지 자연과 같이 더불어 예술을 하는 것이 섬에서 사는 것이나 수행자의 삶과 마찬가지임을 알게 된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물속에 잠긴 김순임 작가의 '흐르는 돌' 작품.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동안 산지천 인근에 많은 설치 작업들이 있었다. 그러나 김순임의 <흐르는 돌>처럼 자연의 시간과 호흡하며 자연이 주는 재료로 예술가도 관객도 감동하는 작업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다채로운 색깔과 여러 형상의 행렬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작업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작업은 마치 구름이 퍼져가는 듯, 물결이 퍼져가는 듯, 돌이 만드는 선이 마치 음과 양처럼 좌우상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밀물에서 썰물로 변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은 마치 귀한 보물이 드러나듯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설치 과정을 영상으로 만든 작업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김순임 작가의 10월 게시물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강술생의 '우후석순', 2020.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멀리 월정리 해안가에서는 2년째 지속되고 있는 강술생과 김미숙이 협업한 작업 <우후석순>이 펼쳐졌다. 작년에 첫선을 보였던 불의 숨길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올해 <우후석순2-달무리>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10월 강술생은 모래밭에 거대한 원뿔형 모래더미들을 쌓고 무용가 김미숙과 80여 명의 관객과 더불어 자연을 누비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때 만든 모래더미들은 1년이 지나는 사이에 바닷바람에 씻겨 나가 남은 모래는 마치 작은 오름들 마냥 겸손한 모습으로 변했고 그 위에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웠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강술생-김미숙의 '우후석순2', 월정리 해안, 2021.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올해는 남은 모래더미 주변으로 모래를 파서 중심부터 가장자리로 뻗어가는 원형의 구조와 선들을 만들고 그 선들과 모래 오름 위에서 작가와 무용수들이 함께 대지의 영혼과 바람의 정령을 불러오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설치 작업과 무용이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예찬하는 시간과 공간에 초대된 관객은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관객은 초대할 수 없었으나 대신 기록 사진과 영상을 제공했다. 구불거리는 제주의 밭담과 풍광을 배경으로 마치 신화 속의 여신들이 내려와 땅을 축복하고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하다. 6분짜리 기록 영상은 지난 2년간 <우후석순>의 변화와 예술가들의 몸짓을 담아내며 제주의 현대예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는데 손색이 없다. 제주도 홍보영상으로 활용되면 좋겠다.(궁금하신 분들은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우후석순을 쳐보시길 권한다)

11월에도 많은 전시와 행사가 이어질 것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제주도 곳곳의 장소와 공간을 탁월하게 해석한 예술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재능있는 예술가들의 낯선 제안을 흔쾌히 수용하는 관용과 제도적 지원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 양은희

 

양은희는 제주출생으로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큐레이터 및 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현대미술과 미술제도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 번역서를 발표했다. 저서로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2017, 공저) ▲디아스포라 지형학(2016, 공저) ▲뉴욕, 아트 앤 더 시티(2007, 2010) 등이 있다. ▲개념 미술(2007) ▲아방가르드(1997) ▲기호학과 시각예술(1995, 공역)을 번역했다. 현재 스페이스 D의 디렉터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