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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가 된 인천의 섬
인천 i-view 발간일 2019.03.04 (월) 15:20
현대 미술과 만난 인천 ④ 시도
<현대 미술과 만난 인천>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속 인천을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의 공간, 사람, 이야기를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다시 바라보고, 낯설고 어려운 현대미술을 인천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연재입니다. |
▲염전에 뜬 달, 가변설치, 2017 (김순임 제공)
며칠 창문도 열지 못할 만큼 탁하고 뿌연 하늘이 드리워진 요즘, 사진 속 청명한 하늘과 구름색이 낯설지만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인다. 깨끗한 산들 바람에 하늘 속 몽실한 하양 구름과 땅 위 잘박하게 채워진 물결이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다.
물이 채워진 바닥 가운데, 검은 빛 둥근 원이 커다랗게 보인다. 마치 파란 하늘뿐 아니라 삼라만상과 희로애락을 담담히 담아내듯이...가만히 보고 있으니 저 먼 곳에서 명상의 종이 울리며 마음도 그렇게 고요해지고 몸도 가볍게 내려앉는다.
▲ 염전에 뜬 달, 설치 과정, 2017 (김순임 제공)
김순임 작가는 자연 속에서 미술 작업을 하며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는 설치 그룹 ‘마감뉴스’의 2017년 정기전을 위해 인천의 섬 시도를 찾았다. 그동안 작가는 자신이 머무는 장소에서 하찮은 돌멩이, 나뭇가지나 나뭇잎, 굴 껍데기들을 모아 커다란 설치물을 만들거나,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솜, 깃털 등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했다.
가급적 덜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해온 작가가 하얀 전시 공간이나 도시가 아닌, 자연을 캔버스로 미술을 하는 대지 미술처럼 섬, 바다, 산 속에서 작업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좌) 신시모도(신도, 시도, 모도) 전경 (출처: 한국관광공사)
(우) 시도 수기 해변 (출처: 인천투어)
영종도 위쪽에 연육교로 연결된 3개의 섬 신도, 시도, 모도가 있고 그 가운데 섬이 시도다. 시도는 모래 해변인 수기 해변과 소나무 숲의 풍경이 아담하고, 드라마 촬영지로 한때 유명했다.
작가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염전 때문에 시도에 갔다. 작가는 소금 채취가 끝나 흙이 잔뜩 쌓인 염전 바닥을 닦아내는 일을 반복하며 원을 그려간다. 오롯이 닦은 일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새 원은 커다란 달이 된다. 강렬한 존재인 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핵폐기장과 골프장 건설 대상지였고 지금은 국내 3대 백패킹지로 알려진 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에선 해안 바위 위에 돌로 원을 그리는 작업 <바위에 뜬 달>(2017)을 했다. 선재도와 떨어졌지만 썰물 때 연결되는 작은 섬 측도에서 작가는 빗속에서 돌을 이고 <물때를 기다리며>(2018) 작업을 했다.
육지 사람들이 관광지로 찾는 섬에서 작가는 염전의 바닥을 닦고, 오랜 시간 돌을 이고 서 있거나 앉아 있고, 파도가 몇 번 몰아치면 없어질 해변 바위 위에 돌로 원을 그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바위에 뜬 달, 가변 설치, 2017 (김순임 제공)
자연 현장에서 일회성으로 진행하는 작업 전체를 관람하기란 불가능하고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작가는 짧으면 몇 시간이거나 길면 며칠씩 걸린 작업을 몇 분짜리 영상이나 몇 컷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YouTube에서 ‘Soonimee Kim’으로 검색하면 대부분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
이야기나 구성이 있는 영화와 달리,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영상 작업을 끝까지 보기란 쉽지 않기에 스쳐지나가는 관람객에겐 TV 리모컨을 돌릴 때 보는 잔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 인내심을 갖고 오롯이 바라보면, 바닥을 닦고 원을 그리고 돌을 이는 사람이 작가가 아닌 내가 되는 묘한 순간을 경험한다.
자연이란 말 자체가 인간중심적 사고를 담고 있고, 생태를 살아있는 자본으로 여기며 모든 문제를 먹고 사는 것으로 빨아들이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섬의 자연에서 쓸데없는 노동을 반복한다. 단순히 자연을 교감하고 보호한다는 계몽적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무용(無用)은 욕망과 소비로 가득한 시대에 개인의 작은 사유와 실천이 가진 희망의 필요를 이야기한다.
채은영 독립기획자, 임시공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