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임의 ‘이 꽃을 보내니 그 꽃을 보내주오’
굴러다니는 돌과 거위의 깃털, 양털, 그리고 실. 김순임 작가는 그렇게 돌과 털과 실로 작업을 합니다. 작은 돌멩이와 깃털을 실로 매달아 공중에 띄우는 방식이지요. 어디 그 뿐일까요? 먹던 열매의 씨앗을 모으기도 하고, 유리병에 씨앗을 담아 싹 틔우기도 해요. 천장에서 내려 온 실이 유리병 속으로 콕 박혀서 씨앗의 싹을 기어오르도록 유혹하지요.
이쯤하면 김순임 작가가 관심 가져 온, 아니 그가 추구하는 미술세계가 무엇일지 어렴풋이 느껴지지 않나요? 시간 나는 틈틈이 그는 노자의 글을 한문 그대로 적는 ‘수행쓰기’를 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거나 대관령에서 도착한 양털을 고르기도 합니다. 또한 이곳저곳으로 초대되어 대지미술인 듯 자연미술인 듯 땅과 나무의 유역에서 몸으로 그리는 물무늬와 터 비우기를 실천하지요.
올해 4월, 그는 자연미술가들과 함께 제주도로 건너가 자연미술의 미학을 그렸어요. 그 시간의 사이 어디쯤이었을 거예요. 그는 해안을 따라 걷다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현무암에 끼어 있는 짚신 하나를 발견하게 되지요. 짚신은 겨우 그 형체가 남았을 뿐이니 다소 시간이 된 듯 했어요. 누가 왜 짚신을 만들어 바다에 띄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죠. 고개를 돌려 근처를 살피니 그런 짚신이 여럿이었어요.
그는 그곳에서 짚신을 꺼내 바위에 올려놓고 생각했어요. 너희들은 누구니? 어디서 왔어? 속으로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제주 바닷가에서 불현 듯 만난 짚신들이 쉽게 말해줄리 없었어요. 그러다가 떠올랐지요. 제주로 건너오는 비행기에서 읽었던 자청비 신화를 말예요. 자청비는 제주신화로 제주의 농경신이 되는 이야기랍니다. 스스로 청하여 낳은 아이라는 뜻의 자청비는 사랑하는 문도령을 따라 저승까지 가지만 그곳에서 죽어가는 문도령을 위해 서천꽃밭으로 가 환생꽃을 가져오지요.
김순임 작가는 문도령과 자청비의 사랑이야기를 떠 올리며 짚신 위에 작은 꽃잎을 올리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바닷가에는 이제 막 피어난 작은 꽃잎들이 있었거든요. 그는 꽃잎을 올린 짚신을 다시 바다에 띄웠어요. 그런 다음 하늘에서 오곡종자를 얻어 다시 지상으로 내려 온 자청비의 이야기처럼 세월호의 아이들이 내려오기를 기도했지요. 환생꽃이 피듯 새 생명으로 지상에 피어나기를 말예요.
혹시 사자상(使者床)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죽은 영혼들을 위해 차린 밥상이에요. 밥 세 그릇, 동전 세 닢, 짚신 세 켤레가 기본이죠. 대문 밖이나 담 모퉁이에 놓아두고요. 굿을 할 때는 술과 떡, 과일, 소적, 지화로 크게 차리기도 해요. 제주의 4월은 사자상 차림이 많은 달이죠. 아마도 바닷가 짚신은 그 때문일 거예요. 그러나 저는 그런 이유를 떠나 김순임의 꽃신이 그라 바라는 것처럼 환생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상을 환하게 수놓은 생명꽃으로 말예요.
김종길 경기미술관 학예사201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