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더니즘이 본질적인 순수성으로 돌아가 그것을 환원할 수 없는 결과로 제시한 역사는 이후의 많은 확장과 탈피의 시도를 거치면서도 하나의 강력한 기준점이 되었다. 대타자 혹은 아버지의 법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더니즘의 유산은 여전히 미술의 부표로 작용한다. (,,,중략)
이는 김순임의 작업이 자연과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그녀의 작업은 우선 근대화 과정이 철저히 대상화시킨 자연을 회복하고, 탈중심화된 외부 세계의 경험을 수용했던 대지미술의 몇 가지 전통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김순임의 작업에는 다원성이 휩쓸고 지나간 다양한 타자들의 음성을 재생하면서, 서구의 장소 특정적 미술이 지니지 못한 토템적 색채가 드러난다. 예컨대 <점과 결>(2014)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개인화된 시간의 상징으로 변화시킨다. 한 장소에 있던 돌들은 나무 한 그루를 둘러싼 작은 물결의 파동이 되어 퍼진다. 이는 무명의 한 장소에서 소리 없이 율동하는 존재론적 음성으로, 장소를 통해 탈중심화된 외부 세계의 경험을 수용하면서도, 소외되고 탈락된 타자를 회복하고 재생하려는 미시적 태도를 지닌다.
김순임은 자연적 질료에 변형을 가하지 않은 채로 중립적 상태에 놓인 자연 대상을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개별적인 의미의 망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지적한 확장된 장(場) 속에서 다양한 장소들을 ‘점유’하고 ‘경험’하는 것에서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장소와 질료를 시간적으로 의인화시킨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에서는 서구의 장소 특정적 미술이 지니지 못한 마술성과 과거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의 자연 방랑을 감지할 수 있다. 송추에서 3일에 걸쳐 직접 돌을 쌓고 만드는 퍼포먼스인 <The Space 23>(2009)이나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에서 보이듯,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작가의 시간과 교감하며 고유한 지점으로 승화하는 과정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유목적인 낭만성을 드러낸다. 즉 우연히 만난 여러 자연물들과 작가와의 기억이 교차되는 과정은 자연적 대상의 고유한 가치와 시간을 끌어내는 시적이며 생태적인 접근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특히 단단한 돌 하나하나의 역사를 호소하거나 해방하려는 김순임의 태도는 실과 천과 같은 부드럽고 푹신한 매체로 재현된 인물의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침대, 이불과 하나가 된 듯 휴식하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도시의 풍경 속에 흡수되어 그대로 배경이 되어 버린 한 청년 등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익명의 존재에 대한 상징적인 기념비와 같다. 따라서 김순임의 작업들은 오늘의 미술이 급진적 이론에 흡수되고 간택되는 가운데에서도 부동하는 가치의 실천과 관련되며, 예술가의 선택으로 모더니티의 규범들에서 탈락된 것들을 논의 가능한 텍스트의 상태로 옮겨 놓는다.
콜로키움, 연계의 (불)가능성 : 동시대 미술의 단면들(2016. 8. 26), 구나연「포스트모더니즘 그 이후, 또는 ‘후(後)’라는 착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