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 :
김순임 작가님
지난 여름에 인천아트플랫폼에서 큰 설치작품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죠. 10미터 가까이나 되는 높이에서 유압사다리를 능수능란하게 직접 운전을 하시 더라 구요. 저는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 했어요. 함께 작업을 도와주던 작가들과 굴 껍데기에 철사를 연결해 하나하나 실을 감아 나가는 과정은 가히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게다가 지난 여름은 정말이지 역사적으로 더웠던 여름이었잖아요. 비도 꽤 오랫동안 내리질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그 징글징글한 무더위 땡볕 속에서 전기 배선에서부터 설치까지 직접 해나가는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거 같습니다. 그런 고생을 뒤로 작가님의 그 작품은 인천에 생활의 뿌리를 내리고 굴로 생계를 이어온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죠. 타이틀 <땅이 된 바다>는 인천 바닷가에 사시는 분들께 큰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껍질 안에 담겨있던 굴은 모두 시장에 내다 팔린 채, 볼 품 없이 내버려진 굴 껍데기들을 일일이 씻고 말려서 평범하고 볼 품 없다 여겨지는 것을 작가가 정성과 조형성을 더해서 아름다운 것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인천 플랫폼에 전시된 그 작품은 아무도 없는 밤에 작은 불빛을 품어내고 있었습니다. 마치 진주를 뱉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작가님의 작품과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재확인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 앞에 선 자연의 일부, 그리고 그 자연에 미술이라는 인위적인 행위로 개입해도 그 속에서 잘 어우러지는 지점이 있음을 김순임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봤던 작가님의 작품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도 하찮은 돌멩이의 역사와 위치를 감상자인 나에게 반추시켜 나와 존재에 대해 여러모로 재인식 하도록 유도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들의 작업이라는 게 대부분 미술작품 형태로 인위적이고 지시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의 작업은 그런 점에서 요즘은 보기 드문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작품을 마치자 마자 또 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돌아오셨더군요. 더운 아프리카에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고 돌과 흙을 이리저리 치우며 또 어떤 작품들을 만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작가님 작업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는지 들을 수 있다면 많은 분들께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 순 임 :
최 선 작가님께..
작업하는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마음에 두고 생각해봐 주시고, 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나시는 분들, 혹은 전시 후 철수작업으로 작품이 해체된 후, 사진이나 영상 등의 자료로 작업을 만나시는 분들, 그리고 전시 이전 작가의 과정과 작업의 설치과정을 만나시는 분들, 또 작가의 일상을 통해 작가를 만나시고 작업을 만나시는 분들… 모두가 작품을 만나고 대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다른 작가의 작업을 만나는 것은 또 다르겠지요… 저 또한 작가님의 작품을 만날 때, 레지던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님의 일상과 생활 속 생각을 함께 만날 수 있어 너무나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최선작가님의 질문이, 제게 매우 의미 있는 파동을 만들어 내는 돌멩이였습니다.
작업의 과정을 지켜보며 느끼셨다는 ‘ 우리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 자연 앞에 선 자연의 일부, 그리고 그 자연에 미술이라는 인위적인 행위로 개입해도 그 속에서 잘 어우러지는 지점이 있음’은
‘자연 Nature’와 ‘미술 Art’가 서로 반대편에 선 개념이 아닌 ‘自然’ 과 美術’의 개념으로 막연히 생각하고, 자연과 싸우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하고자 하는 제 작업에 대한 생각에 용기를 주셨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 저를 초대한 전시 또는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이 ‘무슨 작업을 할 것이냐’는 질문할 때와, 공모에 지원을 할 때, 소위 말하는 ‘작업계획서’ 제출을 해야 할 때, 저는 여전히 방황됩니다. 머릿속에 ‘이번에는 이것을 해야겠다’라는 식의 계획을 짜고, 제가 만날 공간에 제 계획을 얹는 방식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전시를 하고, 작업이 사람들을 만나게 할 욕심에 ‘작업계획서’ 쓰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운 좋게 ‘믿어주는’ 기획자를 만나면, 제가 작업할, 만나야 할 공간에 무엇을 할 생각이 아닌, 그곳에서 배울 마음으로 여러 번 가고, 거기서 만난 이야기나 환경, 공간의 변화, 작가가 만나지는 행위로 인한 변화 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공간에 처음 갔을 때에는 몰랐던 것을, 제가 그 공간에서 보낸 시간만큼, 작업이 마무리 될 즈음, 마음으로 알게 되고, 그것이 작업에 담겨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작가 개인사적으로 남을 새로운 작업이 됩니다. 이번에 ‘땅이 된 바다’가 그런 경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5년 10월부터 인천의 Space Ado의 기획자 정상희 선생님의 기획으로 우리미술관(문화예술위원회의 작은 미술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된 사업), 인천 만석동에 만들어질 예술공간의 개관전 준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대한 리서치와 스터디를 그 일년 전부터 함께 진행해 왔고, 기획자가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작업이 나가는 것보다, 만석동을 만나고, 만석동이 담긴 작업을 해주었으면 하셨고, 이는 제게도 매우 반갑고 신나는 작업의뢰였습니다. 새로운 곳을 만나는 일은 늘 설레고, 그 설렘은 작업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좀 막막하긴 하죠…^^ 설렘과 막막함은 짝 같아서 늘 함께 오는 것 같습니다.
아침에 작업실 가기 전에 산책하듯 만석동을 한 바뀌씩 산책하며 가곤 했는데, 미리 기획자에게 들어서 알 고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마을 길을 걸을 때 마다 보이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었죠… 그 유명한 쪽방촌을 걸을때면 여지없이 뒤통수가 따가웠습니다. 매일 가다 보니 낮 익어 졌는지, 마을 아주머니께서 지나가는 저를 세워 뭐 하는 사람이냐 물으셨습니다. ‘작가’이며 이 마을에 생길 미술관에 작업하러 왔다고 설명 드리자,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의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김중미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유명해져서 마을에는 한동안 관광차 수대가 들어올 만큼 관광객들이 넘쳤다고, 곧이어 ‘쪽방촌체험프로그램’이라더니 사람들이 빈 쪽방을 체험하러 오더라고, 길가로 난 문을 열면 마을사람들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방이 바로 나오는 이 마을의 집들에는 담도 울타리도, 정원도 따로 구분되어있지 않아서, 문만 열면 길인데, 길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떠들고 사진기를 집안으로 들이대며 셔터를 눌러대기도 하며, 심지어 학생들을 인솔해서 온 교사가 ‘ 자~~ 잘 봐~~ 너희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이런 데서 살게 되는 거야!! 알았지!’ 하더랍니다. 힘들지만 없어도 여기서 온힘을 다해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키고, 다른 사람 속이거나 해치지 않으며 살아온 것에 나름 자부심일 있던 사람들이 좌절을 넘어 분노하게 되었답니다. 이 얘기를 하며 저도 아주머니도 울먹였습니다. 울먹임의 끝에 무거운 분노가 가슴을 채워버렸습니다. 우리는 산책하듯 아주머니가 안내해주시는 대로 마을 길을 걸으며, 이것 저것 알려주시는 것을 들으며, 마을 분들과도 인사를 하고, 길에서 얼마나 조용해야 하는지, 길로 난 문 너머에 사람들이 어떻게 쉬고, 생활하고 있는지를 들었습니다.
몇 일 동안 마을을 걸으며,너무 깨끗해서 놀랐고, 버려지는 것 없이 작은 막대기 하나라도 효용을 가지고 마을에 존재함을 보아왔습니다. 버려지는 것이라고는 굴막공동작업장 앞에 포대로 쌓여있는 굴 껍질과 골목마다 몇 개씩 나와있는 연탄재 정도였습니다. 포대 안의 굴 껍질이 봄의 목련꽃잎 같아서 머리를 포대 입구에 대고 보았습니다. 물론 곧이어 찌르는 굴과 뻘 비린내에 오래 보고 있을 수는 없었지만요…
이 마을이 아주 오래 전엔 바다였고, 전쟁이나 가난을 피해 온 사람들이 빈손으로 와서, 바다가 공짜로 내어주는 굴을 캐다가 내다 팔고, 엄청나게 쌓인 껍질들로 뻘을 메워 땅을 만들고, 집을 지어 가족들을 살리며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였습니다.
원래는 바다였던 곳, 잠시 사람을 위해 멈춰 땅이 된 공간,
떠돌던 사람들이 멈추게 한 공간, 떠돌던 사람들을 멈추게 한 공간.
바다처럼 떠돌던 사람들이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가정을 만들게 한 공간.
그들을 멈추게 하고 살게 한 바다의 삶의 흔적, 굴 껍질은 또 전에 어떤 삶의 집이기도 하지요.
비린내 나는 이 굴 껍질은 제게 이 많은 얘기를 품고 있는 여리고 여린 꽃잎 같았습니다.
거칠고 단단하면서, 여리고 부드럽고 투명한 광채 나는 안을 가진 이것이, 이 땅 속에서 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 땅에 살며, 땅이 된 사람들의 모습 같았습니다.
2015 11/4 괭이부리마을 굴막공동작업장 앞에서 만난 딱구네(굴 파는 가게이름)아주머니가 적극적으로 내어주신 굴 껍질 5포대를 작업실에 싣고 왔습니다. ^^ 아… 비린내가 온 작업실을 점령하게 되었죠… ^^ 3달여 굴 껍질을 분리하고, 틈새의 뻘을 빼고, 칫솔로 4번씩 닦고 말리고… 고무장갑은 진작에 찟어 먹고, ㅎㅎㅎ 찬물에 손은 벌겋게 부어 올랐더랬죠 ^^ 그래도 이걸 준 딱구네아주머니 부부는 이걸 바다에서 캐고, 가지고 와 굴을 파내는 작업을 찬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매일 하실걸 생각하면, ㅎㅎ 마치 제가 공동작업장에서 마을 분들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뭐 ‘시간’이니 ‘노동’이니 거창한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 이런 노동이 좋습니다. 일단은 시간이 잘 가고, 그것이 돈의 가치만으로 온전히 환산되지 않으며, 일한만큼 정직하게 눈에 보이고, 뇌를 멈추게 합니다. 뇌가 멈추고 고요해지면 제가 만지고 있는 것이 더 깊이 보이기도 하죠. ^^;; 물론, 많이, 아주 많이, 비효율적입니다. 그래서 전에 해 본적이 있는, 같은 작업을 재현할 때는 저도 어시스트의 도움을 받습니다만, 처음 작업의 정체를 스스로 파악해야 할 때는 기꺼이 일을 합니다. 일을 할 때 느끼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일 중간에 작업자만 보고, 느낄 수 있는 비밀의 순간도 있고요. 그리고, 이건 쉽게 중독됩니다.
2016. 3월부터는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이사 와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땅에서 하늘을 잇듯 가늘고 약하지만 강하게, 유연하고 가볍지만 귀하게, 하나하나 쉽지 않게 오르는 작은 빛을 품은 굴 껍질 넝쿨을 표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한 거죠..굴 껍질을 가져오고, 씻을 때만 해도 어떻게 표현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씻으며, 하나하나 만지고, 다 다른 모양의 생명흔적을 보면서 드로잉이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 나는 왜… 이걸… 가져왔을까..나는 왜 이런걸 시작했을까.. 왜…. 난
뭘 하고 있는걸 까????’ 뭐 이런 비명 같은 질문이 끊이지 않죠…
그 다음은 뭐, 작가님이 보셨듯, 1908개의 굴과 연결된 와이어 가지를 무명실로 하나하나 감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있었고, 30 줄의 연결된 넝쿨 중에서 가장 긴 7줄의 굴 속에 작은 빛을 넣기 위해, 처음으로 전기 다루는 것을 허수빈 작가님께 배워가며 실험하며 수없이 실패의 쓴 시간도 보냈죠.. 거의 포기하게 될 즈음 마지막 실험에 성공하는 바람에, 또 408개의 전구를 심기 위한 납땜의 세계에 입문했었죠.. 전시와 설치가 인천아트플랫폼 야외이었기에, 바람과 햇빛, 비와 태풍, 관람객의 동선과 일어날 가능성 있는 모든 변수, 모두를 고려하여 작업해야 했습니다. 안전을 위해 모든 전기작업을 방수처리하고, 무명실을 코팅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작업을 도와주셨던 두 분이 아니었더라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개인전 일정을 맞추기 힘들었겠죠..
질의 문에서 표현하셨듯이 유난히 ‘바람도 불지 않는 징글징글한 무더위 땡볕’ 속에서 12일간의 현장 설치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설치작업의 순탄한 진행을 위해서라도, 작업자의 건강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해진 (10am-6pm) 작업 시간을 지키고, 무리하지 않게 작업하고, 영양 높은 식사를 하며, 수시로 물과 전해질 음료를 마시고, 시원한 보냉재를 준비하고, 가장 뜨거운 12-2시는 식사후 낮잠을 자게 하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는 더위에도 작업이 마무리 된 후, 하늘의 축하로 비가 오더군요 ^^;;;
2016의 팔월… 잊지 못할 뜨거움의 추억이 생겼지요. 그런데, 12월인 지금, 뜨거움의 고통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고소작업대를 운전하며 신나게 작업한 행복한 기억만 남아, ㅎㅎㅎ 가끔 이 건망증이 제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도 제가 이동하는 길 위에서 진행된 작업 <I meet with stone.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와 지난 초가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종주하며 작업을 진행한 GNAP_글로벌 노마딕아트 프로젝트-South Africa 2016 에 관해서도 궁금해 하셨는데… ^^ 이 수다스런 아줌마가 또 앞에 길게 쓴 것처럼 수다스레 말이 많아질 것 같아 ^^;;; 다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다면 또… ^^
이만 줄이겠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편지 쓰듯 얘기를 하게 되네요… 최선작가님 생각해 주신대로 많은 분들께 흥미로운 얘기였으면 좋겠습니다. ^^
감기조심하시구요 건강하십시요
20161213
김순임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