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발로리스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가기
김순임 (작가)
- 발로리스 레지던시 작업실 'Blue Door'
작가로 살며 늘 궁금했던 공간인 프랑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공고를 보고 그곳에 거주하며 작가들과 교류하고 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지원할 때만 해도 ‘발로리스? 어디지?’ 했다. 한 번도 프랑스를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유명한 도시 몇 곳을 제외하고는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했고, ‘발로리스’라는 이름 또한 생소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역대 작가들의 리스트를 보고, 지도를 찾아보고, 인터넷 검색을 더해갔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를 접하고 있고 옛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된 아름다운 도시임을 서서히 알아갔고, 피카소의 작업실이 있었던 곳이며 많은 작가들의 스튜디오와 갤러리로 마을이 채워져 있고, 유럽 도자예술로 명성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적 자극으로 가득한 환경으로 스스로를 내던지는 마음이었다. 이는 내 작업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6월 29일 오전, 개인전 철수 작업을 마치고 밤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첫 번째 목적지는 덴마크 빌룬드(Billund). 발로리스 레지던시 이후 참여할 덴마크의 전시 답사 차 방문하는 이틀 일정이었다. 확연한 온도 차와 습도 차가 나를 강타했다. 비행장에서 내리자마자 가지고 온 옷들을 여러겹 껴입고서도 추위를 느꼈다. 낮 기온 15~18도면 그곳에선 매우 좋은 여름 날씨이지만, 폭염의 서울 날씨 직후의 경험이라 더욱 춥게 느껴졌다. 이후 4일간 파리로 이동해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를 관람하고, 7월 7일 오를리 공항을 통해 니스로 향했다. ‘nice’라는 단어의 기원인 도시 ‘니스(Nice)’. 출발 전 지인들이 ‘발로리스가 어디야?’ 물으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대답이었던 ‘니스 옆’의 모두가 부러워하던 그 도시 니스. 하지만 어두운 하늘에 번개 치는 니스의 밤을 두고 발로리스 행 버스를 탔다. 다음날 오전에 레지던시 작가 오리엔테이션 일정 때문에 최대한 근처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니스에서 발로리스 까지는 버스로 약 50분이 소요된다.
7월 8일 아침, 마중 나온 데일(디렉터)의 차에서 조지(사진작가, 미국/일본)와 그의 남편 다케시(영상작가, 일본)를 만났다. 이어 서핑보이 닉(도예가, 호주), 핑크를 좋아하는 선생님 나탈리(도예가, 호주), 스태프 쉐파리, 시차 적응 때문에 고생한 모습의 실비(도예가, 레바논/미국) 순으로 첫인사를 나누고 첫 미팅이 시작되었다. 한 달 간의 스케줄을 듣고, 프로그램과 인근 시설에 대한 안내를 받고, 향후 작업 계획에 대한 의견이 오고 갔다.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소성일이고, 매주 화요일 아침 세탁 보낼 것들을 문 앞에 내놓고, 9시 30분 전체회의가 진행되었다. 작업실은 흙 작업 스튜디오와, 소성 스튜디오가 있었고 작가들의 필요에 따라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우리는 이를 ‘Blue door’와 ‘Red door’라 불렀다. 신기하게도 참여작가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작업 경향에 따라 금방 자리가 잡혔다.
- 전시 포스터
마을에서의 생활은 마치 민속촌 한가운데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프랑스의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된 매우 작은 마을 안에 매일 방문하는 엄청난 관광객들이 놀라웠고, 또 그 오래된 집들에 사람들이 모두 불편함을 즐기며 부대끼며 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문화와, 이탈리아, 스페인 문화, 그리고 아랍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환경과 사람이 어색함 없이 조화로웠다. 영화나 그림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다는 환상적인 감정은 잠시이고, 다시 삶은 익숙하게 적응되었다. 아름다움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처음 발견한 이 아름다움을 몸에 입어보는 느낌이다.
숙소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에는 아침마다 많은 새의 깃털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지붕마다 비둘기들이 살기 때문일 것이다. 길 가득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깃털들을 습관처럼 모았다. 그냥 두면 밟혀서 부러지거나 더러워지기 쉽기에 아직 날 수 있는 상태의 깃털들만을 모아보았다. 처음엔 그냥 좋아서 모았는데, 실비와 닉이 내가 작업 재료로 쓰는 줄 알고, 깃털들을 모아다 주곤 했다. 그러다 정말로 한 달 후 전시에서 작품의 형태가 되었다.
우리들의 작업실 앞에는 항상 동네 꼬마들이 어울려 놀곤 했는데, 말도 안 통하는 동양여자를 상당히 신기해했다. 한 꼬마의 궁금증 넘치는 빛나는 눈빛에 반해 흙 한 덩어리를 나누어 주었는데, 문밖에서 하루 종일 집중해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도 어릴 적 동네 화가 아저씨의 작업실 문 앞에서 소꿉놀이하기를 즐겼었고, 그 아저씨가 나눠준 붓과 도화지로 그림을 맘껏 그릴 수 있어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 이 아이가 더욱 특별했다. 아이들은 나중에 내가 한국사람임을 알고는 “꼬레 꼬레”하면서 작업실 입구에서 나를 찾곤 했다. 다른 작가들에게 방해될까 문밖에서 부르다가 내가 나가지 않으면, 어디서 찾았는지 한국 아이돌의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동네꼬마 라이르, 나오미, 셀리아와 친구가 되었다. 이 빛나는 눈빛의 꼬마와 골목의 노신사 로사리오를 모델로 〈The Face〉시리즈를 작업했다. 내가 만난 발로리스의 얼굴이다. 이 얼굴(작품)들은 8월 8일 le Cabanon 갤러리에서 발표되었고, 지역 신문사의 기자들과 발로리스의 미술계 인사들, 유럽 각지에서 온 컬렉터들, 관광객들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오프닝 행사에서는, 피카소축제와 라 포트리축제, 포트리비엔날레로 사람들로 가득 찬 발로리스에서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났다. 다음 날 정부 주관 작가들과의 점심식사에 초대되어 발로리스 공공문화센터(Centre Social Polyvalent)에 가보니 150여 명의 도예가들이 모여 있었고 함께 식사를 나눌 수 있었다. 전날 내 전시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발로리스의 예술사회에 더욱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다양한 배경의 열정적인 작가들을 만나고, 오래된 고도의 역사와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완결된 아름다운 마을을 입고, 매일 다른 나라의 음식을 서로 돌아가면서 요리하고 나누며 즐긴 환상적인 식사들로 배를 채웠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일상으로 즐기는 동네 꼬마들, 새들과 친구가 된 나의 7월이었다.
발로리스 레지던시는 전시 이후, 〈The Face〉시리즈 2점, 몇 점의 드로잉과 Etherial Sand 작품 몇 점을 발로리스 컬렉션으로 하고, 이를 가지고 유럽 각국(프랑스, 스위스, 덴마크, 독일,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등)의 미술관에 발로리스 컬렉션 순회전을 열 계획이다. 그리고 내년에 프랑스와 한국에서 교류전을 계획 중인데, 함께 참여하기로 하였다.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거주와 이동의 반의어가 동시에 작가에게 일어나기에, 가시적인 성과 이외에도, ‘거주’를 통해 그 문화를 자연스레 흡수하고, ‘이동’을 통해 연결된 것들이 자연스레 작업에 드러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작가에게는 늘 새로운 소스를 주고, 그 지역에는 작가가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양쪽 모두에게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 소중한 선물을 귀히 여기고 함께 보낸 분들에게 감사하며, 나 또한 내 작품으로 나누려 한다.
- 전시 전경 le Cabanon 갤러리
- 라 포트리축제 노천가마 소성 장면
[기사입력 : 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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