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념미술_ 괘념스터디_ 괘념작가
김순임
괘념 :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 _ <#괘념미술전 도록중>
시각예술 운운하며 시각적 표현에만 ‘괘념’하는 작가로, 작업이 아닌 ‘글’ 또는 ‘원고’라는 낮 선 방식의 표현은 늘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늘 글에 대한 요구와 필요, 동시에 열등감을 가지게 마련이죠. 시각언어가 있듯, 글에도 글의 언어가 있어서,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쓴 글이 혹시나 곡해나 왜곡, 이용되지 않을까 소심, 조심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아~~ 왜~~~ ‘ : 글에 대한 메일을 받고 1초 안에 나온말
‘????????? 혹시나…. ‘ : 이후 약 10분간 찬찬히 생각하며 …
이걸 한다고 하면, 이 글을 위해 작품사진 그림과 제목만 보고 책꽂이에 꽂아둔 예쁜 옥색 카탈로그를 다시 꺼내, 내 스스로 자세히 읽게 되지 않을까? 2016 게으르게 참여한 스터디의 의미를, 가벼이 던지는 말이 아닌,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내가 아직 모르는, 이해 못한, 이해할 수도 있었을, 어떤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은, 나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잠시 뒤로 물러, 흘려 보냈던 풍경을 느리게 다시 천천히 보기 위한, 스스로의 장치입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직 다 읽고 숙지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아래의 글이 저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스터디의 시작
인천아트플랫폼의 레지던스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 프로그램을 위해 내야 하는 서류 중, 감명 깊게 읽었거나, 작가들과 나누어 읽었으면 하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입주작가 추천도서난이 있었습니다. 딱히 ‘괘념’하며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서 (^^;;; 전 주로 누군가 뭔가를 기다릴 때, 공부가 아닌, 가볍게 차를 마시듯 읽고, 곧 잊죠) 생각나는 책이 없어서 그 칸을 공백으로 비웠는데, 다시 재차 요청하는 메일이 와서, 깊이 괘념치 않고, 그 당시 제 책꽂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책(예전에 비행기안에서 폭소하며 읽었던)을 적어 보냈습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스터디 모임에 관한 공지를 듣고서야 이것이 ‘2016 플랫폼 큐레이션’의 일환으로 진행된 [IAP 스터디]의 관련도서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터디의 과정
앞에서도 언급했듯, 저는 무척이나 “게으른” 스터디어 였습니다. 레지던스 초기 프로그램 설명 시, 스터디 스케줄을 받았을 때, 함께하는 작가들과 이론가들의 흥미로운 주제가 너무 매력적이었음에도, 이미 정해진 날짜와 시간이, 아르바이트나 강의시간과 겹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함께 입주한 작가, 이론가들과 그들의 관심사를 가지고 얘기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은 정말이지 놓치기 싫은 아까운 기회입니다. 그럼에도 작업 생활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작가의 현실이 선택되었지요. 이후 저는 좀 더 일찍 스케줄을 알았다면? 아님 입주 후에 함께 스터디 스케줄을 논의 했다면 어땠을까를 중얼거리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렇게 제 생활의 순위에서 밀린 스터디에 5월이 되어서야 처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시작맴버들이 있었지만, 스터디 날짜가 드디어 시간이 되는 날이 되었고, 흥미로운 주제와 좋아하는 이론가의 발제에 무거운 유리문을 열 용기가 났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스터디는 항상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재미있는 토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제가 손꼽힐 정도로 적게, 그것도 다른 모든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갈 만큼 개인적으로 관심 있고, 흥미로운 주제일 때 참여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충실히 게으른 참여자로서 발제자들이 스터디 몇 일 전에 미리 보내준 자료나 책을 찾아 읽어볼 정도는 못되었습니다. (읽어 보기 위해 매번 프린트를 하고, 들고 다녔지만…) 물론 그렇게 했더라면 더욱 깊이 있는 토론과 많은 공부가 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작업과 개인전에 집중하던 그 즈음에는 스터디에 마음과 정신을 나눌 수 없었던 이유도 있습니다. 이론가가 아닌, 작업에 절대시간이 투자되어야 결과물이 나오는 작가이기에 생기는 고민이었죠. 그럼에도, 김홍기 선생님의 스터디 중에 언급된 ‘미광’의 이해가 제 작업의 중요한 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스터디는 내가 아는 것을 ‘연구’하는 것보다,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을 새로이 이해하고,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게 매우 유용했습니다. 다만, 그 시작점이 이미 제안된 스케줄을 통해 모인 반자발적 그룹핑 형식에, 이미 발제자와 가주제(발제자의 주제는 발제자에 의해 변경되기도 하였으므로)를 정하고 시작한 반자발적 스케줄, 발제자의 발표 후 진행자의 권유가 없이는 스스로 먼저 토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반자발적 토론, 주로 평일 낮 3시에 시작되어 다음 강연 일정으로 인해, 토론이 깊어지더라도 시간 안에 스터디를 마무리 해야 하는 점 등이, 뭔가 개운하지 않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학창시절 몇몇 마음 통하는 동료들과 미술사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수업과 상관없이 자취방에 모여 A4 한 장 정도의 정성스런 요약을 나누고, 그 뜻을 상상하며, 나름의 썰을 푸느라 밤 가는 줄 몰랐던 추억이 있는 제게는 좀 낮 선 스터디 방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작가와 이론가, 입주작가와 일반 활동가, 플랫폼 직원과 작가들 등의 다양한 욕망과 입장, 필요와 관심이 혼재되어 있는 이 필요한 스터디에 대한 효과적인 방식이나 대안은 무책임하게도 제게 없습니다.
* “괘념’전
듬성듬성 참여해서, 스터디에 흠뻑 빠져 괘념하지 못하고, 조금 떨어져 바라보기에도 전시의 방식이 매우 독특했습니다. 전시 주제인 ‘괘념’이 각 참여 주체의 각기 다른 ‘괘념’으로 형성되어, 작품으로 참여한 작가들이나, 기획으로 참여한 큐레이터, 글로 참여한 이론가들의 다양한 ‘괘념’들이 각각 독립된 전시를 연상하게 할 정도의 ‘괘념’의 씨앗들을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신선한 시도는 물론 스터디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신작으로 현재의 ‘괘념’을 적극 표현해준 참여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식의 볼거리를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세상 편하게, 괘념치 않고, 감상자의 입장에서 순수히 전시만 즐기다가, 오픈식에서 문득, 스터디의 결과물 성격의 전시라면, 우리가 나눈 스터디는 어디에 남는 걸까?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스치고,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등등의 몇몇 의문이 들며, 그 의문들이 이 글을 타이핑하는 동력이 되었지만, 이 글을 한 페이지 반쯤 쓰던 중, 이영리큐레이터는 이미 전시서문 마지막 단락에 6가지 질문을 시작지점부터 던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용하자면,
1. <#괘념미술>전은 과연 공동의 기획이었나?
2. 스터디를 통한 연구와 논의 내용이 얼마나 전시에 반영되었나?
3. 소통과 논의의 과정은 매끄러웠나?
4. 큐레이터의 권한, 특히 작가 선정과 작품 선택이라는 일종의 고유 권한을 포기하거나 다른 이와 공유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되었나?
5. 인천아트플랫폼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이나 외부인이 참여하였나?
6. 프로그램을 앞으로도 지속할 것인가?
(#괘념미술 전시도록 13p 이영리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의 글 중에서)
큐레이터는 이 질문이 #괘념미술 Vol2 에서 답이 담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 보입니다. 그녀의 글을 되새기며, 이 질문들이 마음에 두어졌습니다. ‘#괘념’전을 통한 괘념의 생성입니다. 스터디를게으르게 참여한 경험의 나열로 이 글을 채운 저는 이 수다스런 글이,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서로 얘기하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게으른 참여자의 사정과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습니다.
위의 질문에 대한 괘념은 참여한 모두에게 괘념 되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모든 질문에 ‘꼭 그래야 되나?’라는 삐딱한 질문을 스스로 해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결론이나 답을 내려 함이 아니고, 다음의 도전을 위한 동력을 창조해내기 때문입니다.
아쉬움을 발견할 만큼 저를 성장케 한 스터디였습니다. 매번 마음 써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발제자들과 진행자, 의견을 나눈 참여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