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P 2017독일 카셀,뮌스터 탐방프로그램후기_김순임
작성일: 2017. 8. 14.
탐방시기: 2017. 7/17-23
끝날 것 같지 않던 뜨거운 날들이 가을을 여는 비와 함께 한풀 꺽이고, 여전히 습기 가득한 뜨거운 태양아래서 조금 낮 선 바람을 느끼며 꿈같았던 비현실적 시간들을 다시 돌려본다.
누가 부러움 가득찬 눈으로 ‘어땠어?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좋았어’ 가 나오지만, 이글을 ‘좋았어’로 빽빽이 할 수는 없어서.. 나는 탐방의 초기 준비하면서부터 과정에 대한 작가적 입장에서의 단상을 공유해 볼까 한다.
연초부터 그랜드투어에 관한 이야기는 미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술렁거리게 했고, 의지가 있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를 부럽게만 생각하던 나는 (해드린것 없이 받았기에 그저 운이 좋았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사실 인천아트플랫폼의 기획팀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8기 작가들과 함께 너무 귀한 여행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작업을 위해 타지를 여행하여도 작가로서 자신이 참여하지 않는 전시를 시간과 예산을 내어 다녀오기란 정말이지 쉽지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경험을 ‘귀한’이라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탐방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그곳에서 보고, 만나고, 읽고, 배우고, 느끼고 습득할 모든 경험이 그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이는 또 좋은 작업으로 순기능 할 것을 믿어주었다는 생각에 …IAP작가로서의 자부심과 기분좋은 부담감이 동시에 일었다.
예산의 한계때문에 모두 갈 수 없다는 전제에서 이 탐방에 참여할 작가들을 모집하였기에 ‘격하게’ 가보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모두 함께 가지못하는 아쉬움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산’이라는 큰 이유가 있었지만, 그때문에 작가들이 이 기회를긴장하며 참여하고, 참여신청서 작성을 신중히 하며, 막연했던 자신의 참여당위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다. 이는 공공재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하나하나 귀히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입주심사를 거치면서, 격심한 경쟁을 거쳐, 서로 경쟁하는 일에 지쳐있는 레지던시 작가들에게 또다른 경쟁으로 서로 눈치를 보게 될까, 그래서 이제 겨우 가족이 되어가는 동료들과 이후 서먹해 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탐방을 위한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안,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우선순위에 따라, 또는 양보해주는 마음에 따라, 참여자 수가 예산 내로 좁혀진 일은 다행이라 하겠지만, 사실 실무진들이 전체 예산과 진행되는 세부 과정까지 작가들과 공유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독일 현대미술탐방이라는 주제하에 6월초부터 함께한 특강과 스터디는 개별적으로 적정 출석율을 채워야 했기에 각자 전시와 프로젝트, 또는 생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시간을 빼기 부담스러웠던건 사실이다. 실제 내가 참여했던 모든 특강이 매우 유익했고, 즐거웠기에 출석율에 대한 부담이 아니었어도 적극 참여 했었을 거란 생각이다. 즐겁게 특강과 스터디를 참여하고도 출석율 때문에 참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불가피하게 출석을 못했을 때의 죄송한 마음이 불편함이 되었다. 아마도 특강과 스터디에 꼭 필요한 능동적 자세가 심리적으로 수동적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출석을 챙기는 일이 전체 출석율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강과 스터디를 거치면서, 우리는 카셀도큐멘타에 대해 점점더 많이 알아갔다.(뮌스터조각프로젝트에 비해) 그러면서, 막연한 환상 속의, 꼭 가보고 싶은 나의 카셀은 점점 더 공부해야하는 대상이 되어 분석되었다. 너무 많은 정보와 분석이 신선한 현장 기대감을 반감시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막상 뮌스터나 카셀에 가서는, 이미 유명한 작품의 디지털이미지를 섭렵한 후라, 무엇을 꼭 봐야할지,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동선에 관한 연구까지 미리 해온 덕에), 자칫 놓치기 쉬운 부분까지도, 작업의 의미나 과정을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는 한정된 시간과 여건 안에 최대효율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었다. 실제로 뮌스터에서 나는 손가락에 꼽힐 만큼의 작품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출품작과 역대 출품 소장작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택스트와 만들어진 각도의 디지털이미지의 선입견 없이, 마을의 지리, 문화적, 사회, 자연, 사람들과의 관계와 연결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날 감동의 경험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 되었다. 공부해서 알고있는 것 때문에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급히 움직였기에, 작품을 감상하며 하나될 절대시간을 스스로 간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어렵게 귀한 기회로 가게 되었으니, 하나라도 더 보았어야 했나, 아니면 한 작업이라도 깊이 있는 진짜 만남을 위해 좀 더 자신을 비웠어야 했나 하는 양쪽의 아쉬움은 여전히 어느쪽이 무겁다 하기 힘들다.
탐방을 함께 했던 각기 다른 분야의 시각, 공연 예술가들과 기획 비평가들의 서로 다른 시점과 함께 공감했던 좋은 순간에 대한 공유는 내 시각을 넓히고, 성장하게 했던 것 같다. 단순히 넓히고 성장함을 넘어 삶에서 잊지못할 소중한 경험과, 사람과, 시간을 선물 받았다.
가기 전부터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실현방식에 관심이 있었고, 마을 이라는 문화적 공간과 자연지리적공간이 작품과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궁금했던 나는 그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질문거리는 한가득 가지고 돌아왔다. 뮌스터의 행사가 여러회를 거치면서, 세계 곳곳의 대형전시에서 비슷하게 따라가려는 경향이 읽혔고, 결국 더 재미있는 거 없을까? 하는 ‘배고픔’을 확인했다.(물론 내가 현장에서 지금 보고있는 모든 작품이 과거이고 나는 내일의 작업을 해야한다는 새로움의 욕망때문이겠지만..) 카셀 도큐멘타 또한 하나하나 완성도 있고 디테일 좋은 작업들이 너무 복잡하고 많이, 여유없이 아카이빙 된 것이 아닌가 한다.(실제 아카이빙 자체가 작업인작품도 있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의 고민이 지나간 이슈였다면, 이제 갤러리와 도서관의 고민이 가시화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 표지의 각기 다른 색과 제목, 그들이 가득 채워진 공간은 뭔가 충만하다는 만족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도서관의 책들을 모두 즐길 수는 없다. 한권 꺼내서 목차만 읽는다고 다 즐기는 것도 아니다. 마음에 드는 제목의 책을 뽑아서 괜찮은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두고 한자한자 읽어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목차만 보는 사람도있고, 책을 후루룩 넘겨보는 이도 있고, 그냥 도서관에서 쎌피를 찍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시각예술’행사가 아카이빙에 몰입하면서, 작가가 한자 한자 고심하고 삶을 녹여 썼을(책의경우) 작품 본질 보다 도서관의 인테리어디자인이 더 주목받아서는 너무 심하게 아쉬운 일이 아닐까? 아카이빙전시를 하기도 하는 작가 입장에서, 도서관의 인테리어디자인에 해당하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설치할 것인가?’의 가장 큰 의미는 책을 펼쳐 읽게 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려 함이 아닐까?